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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IE TROTTER: A CLIMBING LIFE AFTER KIDS – 계속되는 클라이머의 삶

소니 트로터가 스페인에서 보낸 그의 두 번째 블로그에서 Estado Critico (9a) 완등에 성공함으로써, 아기 아빠가 되어도 여전히 고난도 등반을 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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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Photos: Sonnie Trotter

April 2015

이제 우리의 여정이 반쯤 지났는데 여전히 코르누델라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인심이 좋고, 읍내 사람 모두가 클라이머이거나 클라이머의 친구인 것 같습니다. 15미터 정도만 걸어도 손가락에 테이프를 감고 있거나 초크 가루가 묻어 있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마치 고향 같은 느낌입니다.

코르누델라에서 우리는 정말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우리가 지나갈 때 동네 사람들이 ‘하이’라고 인사하고, 매일 아침 빵집 주인이 우리 아들에게 막대 비스킷을 먹으라고 줍니다. 심지어 아들이 그 또래 아기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그 지역의 어린이집에 등록하기까지 했습니다. 여선생들이 친절하며 애들을 다루는 천부적 재능이 있는 듯 했고, 게다가 아들에게 스페인어로만 말하므로, 말까지 배우는 기회를 갖게 되었죠. 일종의 보너스인 셈이죠. 제가 칼레 보로카(Kale Borroka)를 완등한 후, 더 재미있게 여러 군데를 해보기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더 어려운 루트를 해보고 클래식 루트를 샘플링 – 조나산 지그리스트는 이걸 “프로젝트 쇼핑”이라고 부름 –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새로 사귄 저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등반 파트너인 오페르 블룻리치와 그 일에 착수했습니다. 우선, 아름다운 몬상트(Montsant)까지, 그리고 여러 해 전 토미 칼드웰과 원정 왔을 때 방문했던 유명한 로카 데 미사(Roca De Misa) 암벽까지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 베이스에 이르자, 문득 온갖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바위 모양과 라인, 심지어 햇볕 속에서 프리오라트(Priorat) 와인 지역의 끝없이 구비치는 언덕을 내려다보던 바위 슬랩까지도 말이죠. 도마뱀처럼 그 슬랩 위에 누워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고 과거나 미래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죠. 지금, 이 동일한 바위 위에 저의 어린 식구들과 앉아있는데, 제 맘의 반은 워밍업을 몇 번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고, 나머지 반은 지금 몇 시인지, 아들에게 줄 간식으로 뭘 갖고 왔는지, 아들이 언제 낮잠을 자야할지, 새 기저귀가 필요할지, 그리고 와이프가 뭐를 필요로 할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점 외에는, 거의 전과 비슷하여 마치 여기를 떠난 적이 없는 듯 했습니다.

이제까지 해본 것 중 가장 오버행이고 가장 멋진 5.14급의 하나인 엘멘츠(L-Ments) 밑에 베이스캠프를 차렸습니다. 14년 전, 토미 칼드웰와 제가 이 라인을 시도하여, 둘째 날에는 딱 한번 매달렸다가 올라가는 완-행(one-hang)을 해낼 수 있었으나, 떠나기 전에 완등하진 못했습니다. 제 기억에는 그 루트가 기막히게 훌륭했고, 흐르는 각도의 두 손가락 내지 세 손가락이 들어가는 작은 자갈 포켓에서 멀리 파워풀하게 등반하는 동작이 있었습니다. 그 상단에서는 굉장히 심하게 펌핑이 왔습니다. 중간 크럭스를 잘 돌파해도, 순전히 펌핑이 와서 더 높은 지점에서 휙 떨어질 수 있습니다. 마치 등반 경기 루트 같아서, 휴식 지점도 없고 쉬운 동작 역시 없습니다.

두 번째 시도에서, 완전히 지치고 파워 스위치가 꺼지고 말았습니다. 허나 그 다음 며칠간은 폭우가 내려, 이틀 쉰 후에야, 다시 등반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직 하늘이 개이지 않아, 약간 오버행인 곳이 필요하여, 에라 벨라(Era Vella)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크리스 샤마의 클래식 9a로, 세계 최고의 스포츠 루트라고 많은 사람이 여기고 있습니다. 맨발로 강을 건너고 나서 축축하게 젖어 있는 숲을 지나, 습하지만 푹 젖어 있지는 않은 그 루트의 하반부를 찾아냈습니다. 그 루트의 상반부는 완전히 젖어 있었고, 물이 계속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로프 묶고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등반했습니다. 포켓 때문에 그 루트가 마치 구멍이 뚫려 있는 펙보드(pegboard)처럼 보였습니다. 다만 펙(peg)이 아니라 우리의 손가락을 꽂아야 했지만 말이죠.

그 크럭스 시퀀을 풀긴 했으나, 그 루트는 코르누델라에서 차로 40분이 걸려서, 프로젝트가 되기에는 너무 멀다고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시우라나로 돌아갔는데, 날이 개이고 바위가 바싹 말라, 다른 5.14a 하나에서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기에 이제 뭔가 더 어려운 걸 해볼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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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라나의 엘 파티 지역에 있는 에스타도 크리티코(Estagdo Critico)는 최초로 온사이트 된 9a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어서, 마음이 흥분되었습니다. 알렉스 메고스가 2012년에 그 굉장한 일을 해냈습니다. 먼저 루트를 따라 러펠하며 모든 홀드를 만져 봤는데, 너무나 힘들게 보여 충격을 받고 굉장히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어떤 홀드는 너무나도 끔찍하여, 감히 쓸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오페르와 같이 돌아가, 바닥에서부터 그 루트를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 시도로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는지를 정말로 알려면 100%의 노력을 쏟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크럭스에 육탄 공세를 벌였습니다.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휙 뛰어서 잡는 파운드 무브(pounce move)를 안 떨어지고 처음 해냈을 때, 그 루트 전체를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마치 자신감을 주는 주사 한방을 혈관에 맞은 듯 했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2주 동안에 이 루트를 끝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겼으나, 이 루트에서 추락해도 이 루트에서 재미있게 놀다가 성공하는 것과 똑 같이 행복하다고 맘먹었습니다. 어찌 되든 전혀 기대치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어쩌면 이런 비교적 평온한 마음 상태 때문에 그로부터 5일 후 그 루트를 완등하게 된 게 아닐까 합니다. 아니면 단지 운이 좀 좋았고 컨디션이 정말 완벽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도 있죠. 어떻든, 바닥에서부터 올라가 처음으로 그 크럭스 볼더 문제를 해내자, 악착같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 하면 이번이 사실상 완등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일 수 있어서죠. 다음 볼트에 클립하고 나서, 눈 감고 정말 깊이 심호흡했고, 전력을 다하여 그 상단 헤드월로 향했습니다.

클라이머로서 제 갖고 있다고 느끼는 한 장점은 어떤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등반 중 심장이 빨리 뛰는 경우가 드물며, 제 머리 안팎에서 벌어지는 대화가 별로 많이 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현재의 순간에만 몰입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방법으로 그리고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아는 만큼의, 딱 적당한 에너지를 쓰며 동작 하나하나를 수행합니다.

이번 등반에, 바로 이날에, 20년의 온갖 경험이 저를 위해 합쳐져, 아슬아슬하게 추락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몇 번 거의 떨어질 뻔한 순간이 분명히 있었죠. 허나 끝까지 침착성을 유지하여 앵커 체인에 클립했습니다. 십대에 실내암장에서 처음 등반을 시작한 이래 저의 유일한 두 번째 9a 루트에서 말이죠. 이 등반이 제게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이제 35살의 부모가 되어, 애들과 같이 살며 등반하는 삶이 가능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하는 모든 걸 다 열심히 합니다. 일도 사랑하고 가족도 사랑하고 등반과 여행도 사랑합니다. ‘타툼’이 태어났을 때, 이제 저는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등반은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는데, 그렇게 되는 건 정신적으로는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전보다 더 트레이닝을 할 의욕이 넘칩니다. 결국 효력을 발휘한 것이 그간 구축해온 체력의 베이스인지 아니면 그간 얻은 경험 덕인지 아니면 저의 “노장의 힘” 덕인지는 모르겠으나, 스마트하고 생산적인 삶을 유지하면 여전히 클라이머로서 제가 발전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될 수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Sonnie Tro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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