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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THE GUNKS: A NEW PERSPECTIVE – ‘겅크스’에서의 삶과 새 등반 관

14년간의 체조 선수 생활과 삶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 의사의 진단을 받은 후, BD 앰배서더 휘트니 볼란드는 클라이밍에 관한 새로운 관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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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photos: Ryan Garber

 

머리 위의 크랙에 발을 재밍한 채 큰 홀드에 매달려, 저의 호흡과 지친 전완의 욱신거림을 줄이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대로 쓸 만한 레일(rail) 홀드에서 손을 바꾼 후에, 마지막 확보물을 제거했습니다. 밑에서 저를 끌어내릴 듯한 200피트의 고도감은 마치 하네스에 볼링공이라도 달아놓은 듯한 느낌이어서 더 겁이 나고 펌핑이 왔습니다. 아이보리 색의 바위에서 계단을 뒤집어 놓은 듯한 지역을 30m 돌파한 뒤 겁이 날 정도로 확보물이 벌어진 지점에서 손가락만한 크기의 캠을 설치했습니다. 이제, 오존(Ozone)이라는 루트의 마지막 25 피트 루프의 2/3 지점에 와 있고, 가장 힘든 구간을 앞두고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귓가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막바지의 가을 햇살은 주변 산기슭의 황금색 단풍 위로 춤추었고, 제 오른쪽 어깨 너머 저 멀리, ‘겅크스’의 랜드 마크인 스카이팝 타워(the Skytop Tower)가 보였습니다.

 

등 뒤로 느낄 수 있는 고도감은 리얼하고도 날카로웠고 문득 켄터키 서부에서 자랐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지금의 나의 환경에 약간의 고독감이 느껴졌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볼더링의 대부 ‘존 길’의 1960년대 볼더링 문제가 있는 곳에서 겨우 45분이 걸리는 곳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등반을 제가 알게 된 것은 대학에 가고 나서였습니다. 그 몇 해 전, 체조 경기의 융통성 없는 구조가 지겹고 재미없어 제 삶의 14년을 바친 체조 경기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런 다음 친오빠 라이드가 저를 실내 암장으로 데려 갔습니다.

등반은 체조경기에서 제가 좋아했던 모든 요소가 다 있었습니다. 동작과 몸의 감각, 체중 분배에 대한 밸런스를 요구했습니다. 등반이 전혀 낯설지 않았으나, 체조에는 없는 창의적 요소도 있었습니다. 가령 (바위라는) 매체는 늘 달라지고 끊임없이 형태가 변했습니다. 등반을 시작한 날로부터 3주 후 처음으로 자연 바위에서 선등했고, 그 높이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끼며 진짜 바위와의 교감을 체험했습니다. 손가락 끝이 뜨거운 불에 갖다 댄 듯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픔 가운데 일종의 즐거움이 있어, 저를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 인생 궤도가 바로 그 첫 등반 여행 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이래, 제 삶은 모두 등반을 얼마나 많이 할 수 있고 어디서 할 수 있을까 위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10년이란 기간 동안, 제 주소가 32번 바뀌었고 한 주소는 겨우 몇 달씩만 지속되었습니다. 굉장히 열악한 환경의 파트 타임 일만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때론 친구들한테 돈을 빌렸습니다.

하지만 당시를 돌이켜보면 저는 늘 스포츠 클라이밍 위주였습니다. 집중한 것은 되도록 어려운 등반을 하는 것이었고, 프로젝트를 정해 연습하고 깨끗이 완등하는 것이었습니다. 체조 선수 시절에 제가 물들어 있던 방식이었죠. 처음 여러 해 동안에는 제 자신의 가치를 다분히 제 등반 기량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 밖의 다른 면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2007년, 제게 류마티스 관절염과 비슷한 자가 면역성 관절염인 강직성 척추염이 등에 있다는 진단 결과가 나와 면역 억제제 처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어려운 등반을 과연 할 수 있을지 여부이었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의사들이 이 병을 7년간이나 찾아내지 못했던 말인가? 과연 얼마나 최악의 상태가 될지 걱정이 됐습니다. 척추가 수축하여 기형적으로 굽어지고 녹아버려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비오는 날, 루스 클루네의 지하 트레이닝 월에서 훈련 중인 휘트니. 클루네는 BD의 세일즈 랩이자 겅크스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휘트니와 앤디 살로가 겅크의 밀부룩 애리어에서 종일 등반하고 나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페이스 투 페이스’에서 캠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궂은 일이 좋은 일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성 관절염이 생기자 어려운 스포츠 루트를 등반하기를 바라는 것에서 여전히 등반을 할 수 있는 것만도 신바람이 난다는 것으로 제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일평생 등반 활동을 할 수 있길 정말 간절히 바랬기 때문입니다.

부상 이전의 등반관 그리고 제가 가져왔던 등반에 대한 가치관을—어려운 루트의 완등과 목표 달성—제거하자, 제 열정을 타오르게 하는, 통념과는 다른 또 다른 무형적인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 껍질을 깨버리자, 등반이 항상 어려운 루트의 완등에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론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부분에서 등반은 제 삶에 큰 의미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물론 불가능할 듯한 레드 포인트를 해내는 것도 포함이 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등반이 나를 데려가는 곳. 이제까지 본 것 중 가장 경이로운 경관. 각양각색의 문화를 지닌 각양각색의 나라. 새 바위가 있는 각기 다른 등반지, 등반은 여행입니다. 등반은 친구입니다. 등반은 저를 둘러싼 모든 커뮤니티입니다. 등반은 제 머리에서 떨쳐 버릴 수 없는 석양이며 다섯 번 째 피치에서 봤던 풍경입니다. 등반은 바로 ‘와, 기가 막히네,’ ’저걸 정말 내가 해냈어,‘ 또는 ’오 맙소사, 내가 여기에 살아 있어‘ 같은 느낌입니다.

현재 저는 나무를 때는 화덕이 있는 작은 푸른 색 오두막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오두막은 ‘겅크스’의 ‘모홍크’ 자연보호구역과 ‘미네와스카’ 주립 공원 사이의 좁고 긴 땅 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암벽 등반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장소가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거리 이내이어서, 일년에 200일을 등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이 곳의 느낌 때문입니다. 무언가 깊고 풍요로우며, 오래 되었고 뿌리가 있다는 느낌. 이곳에는 클라이머가 흥미를 갖게 만드는 알 수 없는 마력이 있습니다. 이 암벽의 그림자 밑에는 이미 여러 세대의 클라이머가 투혼을 발휘했던 온기가 서려있습니다. 이 루트들의 위에서 저는 또 다시 등반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존’의 레일(rail) 홀드에 매달려, 전완의 펌핑을 털어내며 다시 컨디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63년에 이 루트를 인공 등반하는 것은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또는 1963년에 ‘트와이라일트 존’을 처음으로 ‘프리’ 등반한 ‘러스 클루네’와 ‘조던 밀스’였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트와이라일트 존’은 이 루트의 중간 구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또는 이 루트의 마지막 루프 구간인 ‘더 프렌치 커넥션’을 자유 등반한 ‘제프 그루텐버그’와 ‘잭 밀레스키’는 어땠을지? 이 세 가지 역사가 내 마음 속에 한꺼번에 몰려드는 가운데 캠 바로 옆 루프의 언더클링(undercling) 홀드를 잡고 그 루프의 턱에 있는 흐르는 각도의 홀드를 향해 과감히 몸을 날렸습니다. 그 레일(rail) 홀드와 루프 턱 사이에서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진 자세에서 더 나은 크림프(crimp) 홀드를 부딪치듯이 잡고 나서, 가장 극단적인 동작, 즉 큼지막한 바위를 껴안는 동작을 하기위해 몸을 그네처럼 움직여 점프를 했습니다. 그 턱을 잡자 몸이 바깥쪽으로 스윙하여, 배가 바닥을 향하는 자세가 되었습니다. 이젠 됐다고 생각했으나, 그 스윙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손가락이 미끄러지면서 제가 비명을 지르며 그 홀드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로프의 아래쪽 끝에 이르자 웃음이 나왔습니다. 로프를 잡고 끌어 당겨 도로 바위로 붙어서, 마지막의 어려운 구간을 통과하고 나서 큰 홀드들이 있는 나머지 30피트도 등반하여 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이제까지 많은 클라이머가 이 루트의 그 홀드를 따라 지나갔습니다. 그 능선에 서서 굽이굽이 펼쳐있는 거대한 계곡을 바라보았습니다. 어쩌면 최초로 이 암벽을 발견한 초등자들이 지금 제가 맛본 것과 똑같은 스릴을 경험했을 겁니다. 그들의 역사는 저의 등반을 보다 큰 풍경화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등반하는 이유를 어떤 단 하나의 글로 정확히 단정지을 수 없었고, 왜 이런 이기적인 취미에 제가 그토록 열중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 등반은 제게 그 무엇도 가져다 줄 수 없는 에너지를 줍니다. 아무리 등반을 내 자아에서 떼어내려고 애써 봐도, 14년의 삶 동안 등반이 저의 일부였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겁니다. 등반은 세상과 소통하고 친근감을 느끼며 연결 고리를 만들어가는 저의 소박한 방식입니다.

 

—Whitney Bo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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