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라나 트래버스(SYLARNA TRAVERSE)는 스웨덴의 가장 대표적인 등산 대상지인데, 스웨덴과 노르웨이 국경 위에 균등하게 자리 잡고 있는 바위와 얼음으로 뒤덮힌 칼날 같은 능선입니다. 여름에는 등반지로 인기가 높고, 겨울에는 보다 알파인적 특성이 있어, 강풍에 휘날리는 안개를 맞고 노르웨이해에서 불어오는 폭풍설로 인해 버섯 모양의 서리 얼음으로 뒤덮입니다.

하지만 오늘, 헨릭 웨스트링(Henrik Westling)이 이 트래버스 코스의 첫 장애물인 템플렛(Templet)의 능선 위로 올라가는 동안 다행히 날씨가 매우 좋았습니다. 프로 스키어였던 헨릭은 안정감 있는 프런트포인팅 자세로 능숙하고 자신감에 넘쳐 등반합니다. 42세의 나이에 깡마르고 키가 작지만 강건한 트레일 러너의 체격을 지닌 그가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며 등반하는 모습은 이 지역 산악 경험이 30년이 넘었음을 드러내는 듯 합니다.

이틀 전, 그와 마티아스 스칸즈(Mattias Skantz)는 잠틀란트와 하르제달렌 (Jämtland and Härjedalen) 주의 모든 봉우리를 스키 마운티니어링으로 등반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총 178 개의 봉우리를 등반하는 동안 오늘같이 좋은 날씨는 드물었음에도 말이죠.

‘실라나 트래버스’ 능선에서 보이는 풍경은 오직 개발되지 않은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 뿐입니다. 헨릭과 마티아스가 해낸 일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는 경관이죠. 중부 스웨덴의 산간 지역은 그 스케일 면에서 알래스카와 견줄 만한 규모입니다. 조금만 걸으면 도달할 듯 보였던 곳이 몇 시간이나 강행군해야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크기를 비교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나무도 없고 접근로도 없어, 눈에 보이는 그 수많은 봉우리를 그리고 수평선 넘어 펼쳐진 더 많은 봉우리를 등반하려는 생각을 하기란 상식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중부 스웨덴은 광대하고 거의 알려진 정보가 없으며 여러 가지면에서 텅 비어있습니다.

잠틀란트(Jämtland)와 하르제달렌(Härjedalen)은 미국 버몬트 주와 뉴햄프셔 주를 합친 정도의 지역을 스웨덴에서 차지하고 있고 면적이 45,000 평방에 달하며, 산의 높이는 거의 비슷합니다. 더구나 주요 도시인 오스터순트(Östersund)와 스키 리조트 타운인 아레( Åre) 외에 겨우 몇 개의 주요 도로를 벗어나면 편리한 도시 문명은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스키의 인기가 유럽에서의 축구와 비슷한 편입니다.”라고 자신이 자란 오스터순드에 대해 헨릭이 말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스키가 순전히 재미, 스피드, 어려운 회전 동작을 구사하는 정도였지만, 얼마 지난 후에는 산에서 멋진 라인을 그리며 스키를 타는 방식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멋진 라인을 고르고 그 라인이 산에 잘 어울리는지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헨릭은 자연스럽게 스키가 자신의 삶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열아홉살에 병역 의무를 마친 후, 헨릭은 몇 번의 동계 시즌 동안 아레(Are)에서부터 유타 주 알타(Alta) 베이스캠프에 이르기까지 풀-타임으로 스키를 타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를 잘 몰랐습니다.”라고 헨릭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최악의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당시 우리는 스키 코스가 아닌 곳에서 온종일 스키를 타곤 했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날씨가 정말로 안 좋은 날이었어요. 그래서 산에 가는 대신 알타(Alta) 스키 애리어에 쿼터 파이프(quarter pipe)를 만들어 놓고 제 능력 범위를 약간 넘는 걸 시도해봤죠.” [참고: quarter pipe: 파이프의 1/4 단면 같이 생긴 램프]

무리한 동작을 시도하던 헨릭이 중심을 잃고 옆구리를 강하게 충돌하며 작은 나무 위로 떨어졌고, 나무에서 튕겨져 나와 눈 속에 처박혔습니다. 그는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갈빗대 몇 개가 부러졌으며 허파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결국 응급 헬리콥터를 타게 되었고 상당한 기간 동안 위중한 상태였습니다. 폐에서 내 몸의 다른 부분으로 많은 공기가 빠져 나가고 있었어요. 이제 제 스키 경력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SKIING, HE DECIDED,
WOULD BE HIS LIFE.

사고 이후, 헨릭은 오스터순드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고민해야했던 그는 지역의 네이쳐 컴퍼니(Nature Company)라는 아웃도어 장비점 하나를 인수했습니다. “몇 년간 열심히 일하면 다시 스키를 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매장 문을 열기도 전에 그 일은 헨릭의 삶을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가게를 성공적으로 키우려고 몰두하다보니, 가게 뒤쪽의 비좁은 사무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졌고, 아웃도어 활동을 하기보다는, 카탈로그와 주문 내역 스프레드시트를 들여다보는 것이 대부분의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벽이 제 뒤로 서서히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라고 그는 회상했습니다. “일 년이 채 안되어, 그는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 공황 상태가 오는 고통을 겪었고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이 상태를 바꿔야만 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런 식의 삶을 더 이상 이어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헌신하는 것만으로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게에서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아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돈을 조금만 벌더라도 다시 스키를 타야한다고 말이죠.” 그래서 헨릭은 일하는 시간을 반으로 줄였습니다. 1주일은 가게에서, 1주일은 가게를 떠나 산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러자 헨릭의 건강이 차츰 나아졌고 오히려 가게의 이익도 좋아졌습니다. “우리는 산에서 새로운 고객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이 자연 속에서 필요한게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고, 점포안의 제품을 바꾸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수익도 점차 호전되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헨릭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매 시즌 그는 자신이 익숙한 몇 개의 봉우리에서 스키를 즐겼는데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잠틀란트와 하르제달렌의 모든 봉우리를 등반하고 스키로 내려온다는 아이디어는 원래 헨릭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스터순트 등반 커뮤니티에서 성장한 헨릭의 멘토는 그보다 연장자인 칼 위스트롬(Carl Wiström)이었습니다. 칼에게도 자신만의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7 여름, 칼 위스트롬은 그 지역의 모든 봉우리를 등반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서, 칼은 누군가 꼭 겨울에 그 프로젝트를 해내야 한다고 내게 말해주었습니다.

위스트롬이 그 모든 봉우리를 등반 하기까지 30년이 걸렸는데, 헨릭 역시도 그 정도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헨릭은 2009년에, 그 프로젝트를 끝내는데 필요한 체력 단련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지역 전체의 산악 지도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178 개의 봉우리 하나하나에 못을 박았습니다.- 이미 그가 등반했던 가장 인기가 높은 약 25개의 봉우리는 빨강색 핀으로 표시했고 나머지는 초록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지역 전체의 산악 지도를 구입했고,

모든 곳에 올라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산 정상의 이름과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등반함에 있어서도 각자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실라나(Sylarna)와 같은 봉우리는 좀 더 기술적인 등반을 필요로 하며, 보다 단순한 봉우리들 또한 악천후를 만나게 되면 등반이 훨씬 어려워집니다.

헨릭이 바즈락리에피에(Väjrakliehpie, 1036m)를 등반했을 때, 시계와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모두 떨어져 GPS 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는데 당시 거센 눈보라로 모든 시야가 가려져 한발자국도 땔 수 없었습니다. 또 어떤 봉우리는 어프로치만으로도 커다란 도전이었습니다. 잠틀란드 북부에 있는 가장 먼 봉우리인 산드팰레트(Sandfjället, 1230m)는 무려 40Km의 어프로치를 필요로 했습니다.

“누구든 얼마 지나고 나면 그런 어프로치에 익숙해집니다.”라고 헨릭이 긴 어프로치에 대해 말합니다. “그저 배낭을 꾸려서 걷기 시작하면 됩니다.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딛기만 하면, 조만간에 거기에 이르게 됩니다. 16시간이 긴 시간처럼 들릴 수 있으나, 하루에 16 시간씩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죠, 아마도 그게 워킹보다는 훨씬 더 힘들 겁니다. 게다가 저는 혼자 있는 느낌, 그 고요함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사랑합니다.

헨릭은 그 봉우리들 중 많은 것을 홀로 등반했지만, 마지막 봉우리를 할 때는 그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해준 모든 사람을 초대했습니다. 어프로치가 비교적 쉽고 정상 근처에 시설이 잘 갖추어진 산장이 있는 블라우하메렌(Blåuhammeren)을 택하여, 가족과 친구, 동료와 스키 파트너를 초청했고 기나긴 프로젝트의 마지막 등반을 함께했습니다

헨릭과 그의 파트너 마틸다는 따스한 옷을 두툼하게 입힌 그들의 아들 미오(Mio)가 타고 있는 썰매를 번갈아 가며 끌었습니다. 그리고 정상에서, 헨릭과 마티아스 스칸즈는 샴페인을 터트리며 자신들의 성공을 축하했습니다.

“처음에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것을 찾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헨릭이 등반을 마친 다음 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제 자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6년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Words: Alex Hamlin
Photography: Mattias Fredriksson
Videography: Spindle

“우리는 모두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과 인간관계, 스키와 일, 이 모든 것이 균형잡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중한 매 순간을, 삶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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