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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이로 오르기

등반과 모험에 출중한 앤드루 킹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들을 오르려는 중이다. 7대륙 최고봉과 7대륙 최고 높이 화산을 합해 열네 개 봉우리에 도전한다. 성공하면 미국 흑인 최초로 오르게 된다. 그런데 킹의 목적은 산을 ‘정복’하는 게 아니다. 야외 스포츠에 인종 다양성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난관이라는 것을 킹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오른 산은 저 살던 770번지 집에서 애스베리파크 거리까지 가는 길이었어요.”

이제 33세로 등반과 윈드서핑, 스킨스쿠버, 오지 탐험을 즐겨 나서는 앤드루 킹. 킹은 흑인으로서 디트로이트시에서 성장하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매일 학교 가는 길이었죠.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거든요.”
디트로이트와는 반대편인 로스앤젤레스의 아파트 집에 앉아 킹은 화상통화로 지난날을 스스럼없이 돌이켜보고 있다. 킹의 깔끔하게 단추를 채운 셔츠에서 전문직다운 면모가 풍긴다. 한편 머리에 쓴 블랙다이아몬드 비니에서는 모험가로서의 분위기도 전해진다. 절묘한 조합이다. 왜냐하면, 킹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세상 사이로 누비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킹은 디트로이트에서도 범죄가 잦은 빈민가에서 자랐다. 홀어머니가 그를 키웠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몰랐지만 킹은 상관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저를 키웠으니까요.”
그런 험난한 환경에서 킹을 무사히 키워 준 이들은 외증조할아버지·할머니부터 외할아버지·할머니, 어머니, 형제들이었다. “가진 건 별로 없었어도 우리에겐 서로가 있었죠.”
킹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갑갑한 현실을 이겨낼 것 같은 자질이 드러났다. 유명 재즈 음악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재즈에 심취하기도 했다. 학업에도 열성이었다. 대학 진학을 늘 꿈꿨다.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유리천장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면 주변 사람들이 곱게 보지만은 않아요. ‘네가 남들보다 잘난 게 뭐가 있어?’ 이런 말을 듣곤 했죠.”
그런 까닭에 킹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킹을 데리고 디트로이트를 떠날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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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할아버지 워런 씨는 군대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전역한 인물로, 할머니 달린 씨와 함께 산다. 킹이 열한 살 때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지아주 스넬빌시로 이주해 살았다. 그때부터 킹은 할아버지로부터 규율 잡힌 생활을 배웠다. 덕분에 오늘날까지 꾸준히 훈련과 절제 있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하곤 하셨어요. ‘무언가를 잘 하고 싶다면 그걸 하기 위한 규율을 스스로 갖추어야 한단다.’”
그러나 조지아주에서는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중학교 때 어떤 친구가 저를 인종차별적인 말로 놀렸어요. 그래서 그만 싸우고 말았죠. 완전히 때려눕혔어요.”
조부모에겐 큰 걱정거리였다. 킹은 학교에서 정학 처분을 받았다. 킹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정학 기간 중, 킹이 거실에서 비디오 게임에 열중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유럽에 간다.’ 그래서 저는 ‘아, 잘됐네요.’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너도 나하고 함께 간다.’ 그러시는 거예요.”

독일에서 학교에 다니면 킹이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해 세계관을 넓힐 수 있을 거라고 할아버지는 생각하셨다. 피부색의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킹이 세계인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셨다.
독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킹은 비로소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웠다고 돌아보았다. 일단 생소한 언어를 배워야 했다. 또 육상선수로 활약하면서 장거리 여행을 나서는 때가 많았다. 단거리 달리기에 소질이 있어 이를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규율을 적용해 실력을 쌓아갔다.

“저는 키가 163센티미터 밖에 안 돼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지긋지긋하지만 매일 훈련하는 것밖에 없었죠.”
킹은 고등학교 선수로 신기록도 세우고 각종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육상에 쏟은 노력의 결실로 마침내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그 전에 하와이의 생활이 킹에겐 무척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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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할아버지는 하와이 오아후 섬의 에바비치에서 군 생활을 한 적이 있다. 킹은 18세 때 이곳으로 이주했고, 지금껏 킹은 이곳을 집처럼 여긴다. 이곳에서 킹이 즐기던 스포츠에 처음으로 유색인종이 참여하는 것을 보았다.
킹은 이렇게 설명했다.

“하와이에서는 피부색이 검은 사람도 윈드서핑을 하더라고요. 물론 선수로서 경쟁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피부색으로 차별받지는 않아요.”

킹은 윈드서핑에 빠져들었다. 특히 파도를 읽으며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게 재미있었다. 등산에도 흥미를 두었다. 산과 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을 찾아 오르는 게 좋았다.

다만 산과 바다는 잠시 제쳐두어야 했다. 킹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무어하우스 대학 입시에 합격했어요. 가족은 정말 너무 좋아했지요.” 조지아주 애틀랜타시에 있는 무어하우스 대학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흑인 중심의 사립대로, 킹의 말마따나 ‘흑인 하버드 대’라고 불릴 정도다.
하지만 킹에게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메인주립대학으로 진학하는 데에 마음이 기울었다.

“식구들이 그러더군요. ‘미국 전체에서 백인만 제일 많은 대학에 간다고?’”

메인주립대학에서 체육 특기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등록금을 부담하지 않으셔도 되었기 때문에, 킹은 결국 이쪽을 택했다.

메인주립대학에서 킹은 언론학과를 다녔고 부전공으로 정치학을 공부했다. 방학이면 늘 정다운 하와이를 찾아 윈드서핑과 등산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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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를 졸업한 뒤 킹은 보스턴시에 있는 라셀대학교 대학원에서 통합마케팅을 공부했다. 이때 킹은 등반에 더욱 큰 매력을 느끼게 됐다. 킹이 22세 되던 해였다. 조금이라도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으면 등산과 윈드서핑에 쏟아부었다. 당시에는 화산을 오르는 걸 즐겼다. 정상에 오르고 나면 내려와 윈드서핑을 나서는 게 일과였다. 석사학위를 받은 뒤 킹은 레고에 기획 담당 사원으로 입사했다. 직업과 야외 스포츠 활동을 꾸준히 병행했다. 회사, 산, 바다가 아니면 킹은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곤 했다. 조부모는 워싱턴주 푸옐럽시의 농장으로 은퇴해 있었다.

킹이 ‘세상 사이로 오르기’ 프로젝트를 생각하기 시작한 게 이 당시였다. 26세 되던 해, 후지산을 등반하러 가던 차 대만의 한 탄광촌에 들렀던 때가 있었다. 당시 한 찻집에서 어느 현지 여성을 만났다.

“제가 어디서 왔냐고 묻더라고요. 미국에서 왔다고 했죠. 그러자 ‘전 항상 그 나라 가보고 싶었어요.’ 그러기에, ‘언제 한 번 꼭 가보세요.’라고 했죠.”

그때 킹의 머리를 번뜩 스치는 게 있었다.

“아차, 내가 한 말은 참으로 무심한 얘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사람이 버는 것보다 훨씬 돈이 많이 들 거였거든요.”

그때를 돌아보며 킹은 우린 모두 ‘세상 사이’로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땅에 태어나는 건 마치 복권 같은 게 아닐까요? 디트로이트에서 흑인으로 나는 거나, 대만 탄광촌에서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처럼요. 이게 네 복권이다! 우린 모두 유리천장과 그 위 사이를 탐색하며 사는 셈이죠. 몇 년 동안 곰곰 생각해 봤어요. ‘세상 사이로 오르기’ 프로젝트는 그 결실이죠. 유리천장 아래 서서 그 위를 올려다본다는 개념이죠.”

이날부로 킹의 생각은 바뀌었다. 산을 ‘정복’하는 게 아니라, 대신 곳곳마다 서린 갖은 고초를 감내하며 이겨내려는 이야기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의 높은 산 열네 개가 목표였다. 7대륙 최고봉, 또 7대륙 최고 화산을 오르는 계획이다. 최초의 흑인 미국인으로 14개를 모두 오르는 기록이 될 터였다. 하지만 킹에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이 계획은 유리천장을 이겨내려는 사람들이 겪는 고생 서린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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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은 등반지로 여행할 때마다 해당 지역에서 봉사하고 있는 비영리기관들과 연계한다. 킹에 따르면 이들 기관은 ‘자연 속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하면서, 인종차별, 성차별, 기후변화,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한다.

킹은 3년 전에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증조할머니 에드너 리스 씨와 가깝게 지내면서 또 ‘세상 사이로 오르기’ 계획도 추진하기 쉽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 킹은 산 열한 개를 더 올라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쉽지 않아졌다. 지난 4월에는 킹의 증조할머니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킹은 아직도 슬픔을 감내하는 중이다.

‘세상 사이로 오르기’는 킹에게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뜻을 계속 이어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모든 게 여기에 녹아 있죠. 단순히 이곳저곳 다니면서 등반만 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배울 수 있었어요. 유리천장을 극복해 가는 인생을 살게끔 도와줬지요.”

킹의 다음 목표는 북미 최고봉 데날리다. 정상에 오르면 증조할머니를 화장한 재를 그곳에 뿌릴 계획이다.

“증조할머니가 인생을 시작했던 곳보다 더 높은 곳에 머무셨으면 해서요. 증조할머니가 제게 해 주셨던 게 바로 그거거든요.”

앤드루 킹과 ‘세상 사이로 오르기’ 프로젝트 사이트: thebetweenworldsproj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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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크리스 파커
사진: 앤드루 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