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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로 헤메츠버거: 유럽에서 가장 어려운 멀티피치 – 보규(WOGÜ)

블랙다이아몬드 소속 롤랜드 헤메츠버거 선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어려운 멀티피치 루트라고 알려진 보규가 너무나도 큰 벽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알프스에서 아담 온드라가 초등한 7개 피치 짜리 루트도 끝냈지만, 테크니컬하고 손가락 힘을 많이 요구하는 5.14b 난이도의 보규는 손가락 부상이 있는 그에게 새로운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여느 때와 같이 찾아간 할머니 집에서 그는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그에게 동기부여가 된 것일까요. 보규의 세 번째 완등자 롤랜드 선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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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봄

또 비가 오네요. 흠뻑 젖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인대까지 너무 아파요. 지금 하네스를 매고 줄에 매달려있는데,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요. 등반할 때 겪는 이런저런 어려움들…
네, 지루한 부분이죠. 하지만 시작부터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rolo.wagu.7사진: 파비앙 하게나우어(Fabian Hagenauer)

약 1년 반쯤 전에 날레 후카타이발 선수로부터 보규를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왔었습니다. 하지만 도전 이틀 만에 중지 인대가 파열되어 3개월 동안 쉬어야 했습니다. 이제껏 부상이라곤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날레 선수의 빌레이를 봐주고 서포트 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날씨가 좋지 않아 날레 선수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그럼 부상 3개월 동안 무엇을 했냐고요? 뭐 이런저런 일상적인 일들이요. 오랜 친구들을 만나 맥주 한잔하고, 시험공부를 했습니다. 덕분에 할머니를 이전보다 더 자주 찾아뵐 수 있었어요. 휴식도 아주 좋았지만, 할머니께서는 제가 걱정되는 모양이었습니다.

“네가 정한 목표에 믿음을 가져야 해”라며 조언해 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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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조언에 따라 계획을 세워 생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17년 봄

제 인생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룩으로 거처를 옮겼고 블랙다이아몬드에 취직했습니다. 그리고 슬슬 알프스의 도전을 재개할 때가 되었죠.

제가 세운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6:00 a.m. 기상. 행보드 트레이닝 및 복근 운동 한 시간

8:00 a.m. – 12:00 p.m. 블랙다이아몬드 근무

12:00 p.m. – 1:30 p.m. 점심 식사 후 행보드 트레이닝 및 복근 운동 한 시간

1:30 p.m. – 6:00 p.m. 근무. 퇴근 후 행보드 트레이닝 및 복근 운동 한 시간

몇 주 동안 계획에 따라 생활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인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이 적용되지 않는 프로젝트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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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종종 혼자서 차를 몰고 산으로 가 루트를 살피고 홀드를 핸드폰으로 찍으면서 무브에 대해 혼잣말을 하곤 합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나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제가 찾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니까요. 클라이밍이 흥미로운 점이 바로 이것이죠. 신체적으로 강해지는 것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더 똑똑하게 등반하는 방법을 찾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도전 중인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무브가 어렵고 손가락에 무리가 많이 가는 루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루트에 적응하는 데만 몇 시간이 필요하죠.

티베트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알프스에 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배는 쌀국수로 가득 찼지만 저의 의욕은 어느 때보다도 충만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40시간이 걸렸지만, 힘들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엔 온통 목표인 래티콘 산뿐이었죠.

어머니께서 공항에 마중 나와 계셨습니다. 부모님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았는데, 어머니께서 저에게 집에 더 있을 것인지 물으셨죠. 저는 이미 스위스로 갈 짐을 차에 실어 놓은 상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습니다.

“아들아,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거니?”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내 인생에서 무언가에 집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가치 있는 인생이 아닌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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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틀은 아주 난장판이었습니다. 눈이 많이 쌓여있었죠. 주말에 감기까지 걸려 컨디션은 최악이었습니다. 도전이 물거품이 되는듯해 보였습니다.

주 중엔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 사무실로 출근했고, 몸을 다시 회복시켰습니다. 2주 후, 제 친구인 제노 햄버거(Zeno Hamberger)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전에 약속했던 대로 네 프로젝트에 내가 같이 가줄게, 학교가 방학했어.”

우리 둘 다 크게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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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뜻밖에도 완등에 꽤나 많이 근접했습니다

40m 길이의 마지막 8b+ 피치에서, 완등에서 불과 몇 미터만을 남겨둔 채 세 번이나 떨어진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팔에는 쥐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서 이틀 후, 9월 30일, 저만의 플로우를 찾았습니다.

첫 시도만에 모든 피치를 성공적으로 등반했고 오후 7시에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죠. 로프를 정리하고 친구를 끌어안는 순간 제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멀티피치 중 하나를 완등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15분 후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운명이었던 걸까요?

-롤로 헤메츠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