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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딥 – 영혼 깊은 곳의 울림

미국 테네시주 사우스 멤피스의 한 지역인 소울스빌이 크게 바뀌고 있다. 놀랍게도 암벽등반이 가져온 변화다.다큐멘터리 <소울딥>에는 멤피스락스라는 실내암장이 등장한다.그런데 영리추구를 위한 사업장이 아니다. 대신 ‘고객이 원하는만큼만 지불’하는 방식을 따른다. 실내암장이 다양성, 포용성, 공동체 정신 확장을 위한 기폭제가 될 수 있을까.
영화는 그런 게 실제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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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콘라드는 평소처럼 등반하던 중에 암장 친구 말릭 마틴과 대화를 나눈다. 괜찮은 체력에 매일같이 열심히 운동하는 에이든은 잠시 쉬면서 양팔의 근육 피로를 풀어주는 셈이다. 얘기 나누는 사이 말릭은 니콘 카메라로 에이든 스냅 사진을 여러 장 찍는다. 이곳 멤피스락스 실내암장은 근방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 시키는 기폭제가 돼 왔는데, 사진작가 말릭은 그런 역동적인 변화의 바람 속에 있는 이 젊은 등반가를 사진 몇 장 속에 담는다.

말릭은 멤피스락스의 소셜미디어 매니저이기도 하다. 에이든이 암벽등반에 푹 빠지게 된 경위를 묻는다. “암벽등반은 제가 잘 할 수 있는, 끝내주는 스포츠예요.” 에이든의 이유는 단순하다. “예전에는 함께 쏘다니던 친구들이 있었죠. 지금은, 아뇨. 그 친구들과는 더는 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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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 중인 에이든  사진: 말릭 마틴
에이든에겐 너무도 간단한 얘기다. “등반할 때면 아무 걱정이 없어요. 그냥 즐거워요.”안전하고 즐거운 곳에 있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스스로 떳떳한 곳. 게다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끔 허락되는 곳. 소울스빌에서 그런 곳은 바로 멤피스락스 암장이다. 빈민가의 낡은 건물들 사이로 어울리지 않아 보일지 모르지만, 최신식 암벽등반 설비가 갖춰진 암장이다. 이곳에서 청소년들은 안전벨트, 초크, 로프를 써 가며 등반벽만이 아니라 더 높은 장벽을 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암벽등반 같은 스포츠는 변화를 끌어내는 대단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데에서 그런 잠재력이 발휘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도미닉 질 감독의 말이다. “때문에 멤피스에 그런 기관이 있어 소외된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고, 암벽등반으로 고질적인 문제를 고쳐나간다는 얘길 들었을 때, 이거야말로 공유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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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타스 시워드 일명 “Q”  사진: 말릭 마틴

이 다큐멘터리는 블랙다이아몬드의 협찬을 받아 제작됐다. 촬영을 위해 질 감독은 스태프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소울스빌에 머물렀다. 이 지역은 볼더링보다는 소울, 블루스 등의 음악과 바비큐 등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한편 1968년 흑인 인권운동의 대명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살해된 곳이 채 10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소울스빌은 과거 인권운동의 마지막을 이어 최근의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에도 중심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곳에는 백인우월주의 비밀단체 KKK의 창시자인 남부연합군 네이선 베드포드 포레스트장군의 동상도 있었다. 이 동상은 시민의 요구로 지난 1월에 철거됐다.

사진작가 말릭 마틴은 시위 취재를 마치고 이제는 사회 전반에 퍼진 인종주의로 관심을 돌렸다. 마틴의 이야기는 거대한 변화의 일부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이실내암장이 있었다.
“우리는 이 지역사회의 기둥이나 마찬가지예요.” 마틴의 표현이다.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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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호크와 말릭 마틴이 멤피스 락스의 헤드 루트 세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앤드류
멤피스락스는 비영리 자선단체다. 멤피스락스는 미국 남부의 빈곤층과 흑인이 다수인 어느 도시에 설립됐다는 사실 말고도 유별난 점이 있다. ‘지불 할 수 있는 만큼 내기’ 방침이다. 이는 특히 코로나-19로 주변의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 단순히 생필품을 공급하는 이상으로 지역사회의 거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확진자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에는 하루에 식사 6백인 분을 제공한 적도 있었어요.” 존 호크 운영팀장의 말이다. “이 근방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주방에서 뭐든지 해보려고 온갖 노력을 했죠. 동네 주방장들까지 초빙해 특별 요리도 여러 번 제공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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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락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애이든 사진: 앤드류
멤피스락스는 단순한 실내암장이 아니라 사교와 문화의 중심지인 셈이다. 에이든이나 그의 형 아르마니 같은 젊은 친구들은 등반이 재미있어 처음 시작했지만,몸놀림의 즐거움보다 더 큰 보람이 따르는 것을 곧 깨달았다. 볼더링 문제를 풀거나 까다로운 루트를 오름으로써, 지역사회에서 늘 맞닥뜨리던 다른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하는 태도를 키울 수 있었다.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의 환경에더는 수동적으로 물들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확인하게 됐다.

“멤피스락스 암장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안전한 피난처인 셈이죠.” 말릭의 말이다. “돈이 많든 적든 상관없어요. 그저 앞에 놓인 벽이라는 같은 문제 앞에 우린 하나인 셈이죠. … 볼더링 문제풀이 방법이라도 알면 서로 어울리면서 고정관념을 깨나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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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쿠엔타스 시워드 & 말릭 마틴
오른쪽: 쿠엔타스 시워드의 스튜디오  사진: 앤드류
실내암장은 회원들이 지역사회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소울스빌 너머 넓은 세상도 보게 된다. 회원 중에는 최고 수준의 등반가도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프로 등반가 카이 라이트너다. 에이든이 암벽등반 실력을 크게 키워가는 데에 카이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격려와 지도로 보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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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라이트너 사진: 말릭 마틴

“처음으로 실내암장에 갔던 때가 잊히지 않네요. ‘흑인인데도 우리처럼 등반하네?’ 이런 느낌을 확 받더라고요.” 카이의 경험담이다.

백인들의 전유물로만 보이는 스포츠에서 흑인 등반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중요하다. 비슷하게 소외된 집단에서 출발해 카이처럼 국가대표 선수로서 대단한 등반력을 보이는 롤모델이 있다는 것은 어린 청소년들에게 큰 자극이 된다. 암장에서의 이런 교류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뛰어넘는 사고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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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라이트너 사진: 말릭 마틴

여느 도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멤피스락스 회원들은 야외로 나가 즐기고 감사하는 기회도 얻는다. 꽤 멀리 떨어진 앨라배마주 클레어 카운티에 있는 호스펜스 암장까지 단체 암벽등반 여행도 종종 암장에서 기획한다. 에이든과 아르마니, 별명이 ‘큐’로 영화에서 재기발랄하게 등장하는 쿠엔타스 시워드 등 흡수력이 빠른 청소년들은, 암장에서 배운 실력을 집에서 멀리 떨어진 자연 속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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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더링을 하고 있는 아르마니 사진: 말릭 마틴

“암벽등반에 푹 빠졌어요. 대자연이 주는 선물을 직접 경험한 거죠.” 큐의 말이다. 멤피스락스 사람들 이야기는 큰 교훈이다. 우리 각자 어떻게 주변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울스빌 사람들은 제각각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주변 사람도 함께 변화시킨다. 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말릭 마틴작가의 미래도 기대된다. “인간은 자기만을 위해 늘 주변을 무시해 왔습니다.” 말릭의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이 주변에 언제나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울스빌에서 뜨겁게 등반하는 이들이 모인 이곳, 멤피스락스 암장이다.

-제임스 에드워드 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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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콘라드 사진: 말릭 마틴